1995년 출범한 광주비엔날레는 미술계 관계자뿐 아니라 많은 관객들이 찾는 세계적인 미술축제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일반 관객이 방대한 규모의 전시를 온전히 즐기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다.
본 연재는 《2026 16회 광주비엔날레》(2026.9.5-11.15)와 관객들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을 좁히고자 하는 것이 기획의 의도이다. 따라서 본 지면에서는 ‘광주비엔날레’가 아닌 참여작가들의 ‘개별 작업’을 다루게 될 것이다. 이 글이 관객들로 하여금 작가들의 작품세계에 보다 가까워지는 경험을 선사하기를 기대한다. 



《2026광주비엔날레: 너는 네 삶을 바꿔야 한다》작품론
16회 광주비엔날레: 너는 네 삶을 바꿔야 한다 2026 9.5 – 11.15




정금형: 회복과 통제 사이



이누리


신체는 세계를 경험하게 만든다. 모리스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 Ponty, 1908-1961)는 『지각의 현상학』(1945)에서 신체를 표현의 공간이자 의미가 발생하는 근원으로 바라본다.1) 메를로퐁티에 따르면 신체는 지각의 주체이다. 즉, 인간은 신체를 통해 세계에 존재할 뿐 아니라 신체를 통해 세계를 지각한다. 이때 세계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소생시키는 것이 필요한데, 메를로퐁티는 그러한 과정에서 우리 자신이 발견된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견해는 정금형(1980-)의 작업을 바라보는 하나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정금형은 기계와 사물, 그리고 신체와의 관계에 대한 작업을 선보인다. 연극영화과와 무용원을  졸업하고, 연출과 애니메이션을 공부한 독특한 이력은 설치와 퍼포먼스를 비롯한 다양한 형식이 교차하는 작업의 배경을 이룬다. 그녀는 작업 초기부터 진공청소기와 운동 기구, 마네킹 등의 오브제를 퍼포먼스에 끌어들이며 성적인 욕망과 판타지를 암시해 왔다. 예컨대 〈유압 진동기〉(2009)에서 정금형은 자웅동체(雌雄同體)로 등장하여 굴착기 대면하거나 〈휘트니스 가이드〉(2011)에서는 운동 기구와의 에로틱한 교감이 연출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금형은 기구를 조작하며 자신의 동작 역시 가다듬게 된다.

이는 〈심폐소생술 연습〉(2013-)에서도 반복된다. 정금형이 마네킹에게 심장 마사지와 심폐소생술 등 응급처치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돌봄은 성애적 긴장과 맞닿는다. 흥미롭게도 정금형의 작업은 신체를 전면에 내세운 퍼포먼스에서 오브제를 배열하고 제시하는 방식으로 점차 이동한다. 이러한 변화의 단초는 ≪개인소장품≫(2016)에서 확인할 수 있다.2) 정금형의 이러한 작업 방식은 제 16회 광주비엔날레에 본전시에 출품된 〈재활 훈련〉(2015-)에서도 드러난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새하얀 벽으로 둘러싸인 사각형의 공간이 펼쳐져, 병원의 진료실을 연상시킨다. 푸른 치료대 위에 누운 마네킹과 주위에 있는 여러 개의 스툴은 관람객의 시선을 붙든다. 마네킹은 상의를 입지 않은 채 팔과 다리를 늘어뜨리고 있으며 주위에는 재활 보조 장치와 금속 프레임, 치료용 침대와 작업대가 놓여 있다. 치료대 위에 있는 신발 역시 궁금증을 자아낸다. 〈재활 훈련〉에서 정금형은 재활 치료사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 

마네킹은 인간의 형상을 띠고 있지만 스스로 움직일 수는 없다. 팔과 다리는 작가가 관절을 움직여 줄 때에야 비로소 구부러지고 펴진다. 팔을 들어 올리고 허리를 구부리는 동작은 마네킹 스스로 수행하는 행위가 아니라, 작가가 관절을 잡고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마네킹은 치료의 대상이자 퍼포먼스의 동작을 이끌어내는 조건이 된다. 정금형은 마네킹의 자세와 관절에 맞추어 자신의 몸을 기울이고 손의 위치를 조정하며, 그 움직임을 하나씩 수행한다. 따라서 퍼포먼스의 동작은 작가의 의도만으로 완결되지 않고, 마네킹의 형상과 자세를 거쳐 구체화된다. 작가는 치료자의 태도로 마네킹을 돌보면서도, 마네킹이 어떤 자세를 취할지 결정하는 통제자의 역할을 함께 맡는다. 

그러나, 사실 마네킹은 재활이 불가능한 존재이다. 마네킹은 신체 기능이 손상된 생명체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걷거나 뛰고 움직이는 능력을 지닌 적이 없는 인체 모형일 뿐이다. 따라서 정금형의 〈재활 훈련〉은 손상 이전의 상태를 회복하려는 일반적인 의료 행위와는 달리, 회복의 출발점과 도달점을 설정하기 어렵다. 재활 훈련이 계속되더라도 마네킹은 스스로 움직이거나 일상으로 복귀할 수 없으며, 재활의 성과는 신체의 변화로 확인되지 않는다. 정금형은 회복을 목적으로 삼는 재활을 회복 불가능한 대상 앞에 놓는다. 그 결과 재활은 완치나 기능 회복으로 귀결되는 과정이 아니라, 달성할 수 없는 목표를 향해 지속되는 행위로 드러난다. 회복의 가능성을 전제하는 의료적 언어와 실제로는 회복될 수 없는 마네킹의 조건 사이의 간극은, ‘재활’이라는 행위가 무엇을 회복시키고자 하는지 되묻게 한다.

한편 정금형과 마네킹의 관계는 재활을 수행하는 주체와 그 대상이라는 역할 구분을 흔든다. 정금형은 의료 기구를 매개로 마네킹의 자세를 바꾸지만, 동시에 마네킹의 신체 구조와 치료대, 재활 장치의 위치에 맞추어 자신의 자세와 동작을 바꾼다. 마네킹은 조작되는 사물이자 퍼포먼스의 동작을 가능하게 하고 범위를 정하는 물질적인 조건이 되는 것이다. 주변의 의료 기구 역시 단순한 배경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다. 의료 기구들은 신체를 지지하고 움직임을 유도하는 한편, 움직임이 특정한 절차와 방향을 따르도록 통제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작가와 마네킹, 의료 기구는 독립된 요소라기보다 하나의 수행을 조직하는 관계망으로 기능한다고 볼 수 있다.

약 세 시간 동안 이어지는 퍼포먼스에서 정금형은 마네킹의 몸을 움직이기 위해 반복적으로 자세를 바꾸고 의료 기구를 다루며 고군분투한다. 관객은 이 수행을 지켜보며 작가의 움직임을 따라가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신체가 공간과 사물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새삼 의식하게 된다. 신체를 주변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경험하게 하는 이 관심은 이후 〈홈메이드 RC 토이〉(2019)를 기점으로 로봇과 같은 기술적 요소를 다루는 작업으로 확장된다.



이누리(2001)
이화여자대학교 미술사학과 석사 과정 재학. 디아스포라와 정체성 문제를 중심으로 동아시아 현대미술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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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메를로 퐁티, 『지각의 현상학』, 류의근 역(문학과 지성사, 2002), 233; 316.
2) 이진실, 「정금형 Geumhyung Jeong」, 『월간미술』, https://monthlyart.com/portfolio-item/정금형/, (2026년 10월 10일 검색). 

참고문헌
이진실. 「정금형 Geumhyung Jeong」. 『월간미술』. https://monthlyart.com/portfolio-item/정금형/ (2026년 10월 10일 검색). 
현시원. 「어쩌다 보니 커져버리는 것들: 공연예술가 정금형 인터뷰」. 『서울문화재단』. 2016.  http://choomin.sfac.or.kr/zoom/zoom_view.asp?type=out&zom_idx=115&div= (2026년 10월 10일 검색).
작가 홈페이지. https://www.geumhyungjeong.com/archive.html (2026년 10월 10일 검색). 




정금형, 〈재활 훈련〉(2015-), 설치 및 퍼포먼스, 가변크기 ⓒ 이누리



정금형, 〈재활 훈련〉(2015-), 설치 및 퍼포먼스, 가변크기 ⓒ 이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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