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출범한 광주비엔날레는 미술계 관계자뿐 아니라 많은 관객들이 찾는 세계적인 미술축제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일반 관객이 방대한 규모의 전시를 온전히 즐기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다.
본 연재는 《2026 16회 광주비엔날레》(2026.9.5-11.15)와 관객들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을 좁히고자 하는 것이 기획의 의도이다. 따라서 본 지면에서는 ‘광주비엔날레’가 아닌 참여작가들의 ‘개별 작업’을 다루게 될 것이다. 이 글이 관객들로 하여금 작가들의 작품세계에 보다 가까워지는 경험을 선사하기를 기대한다. 



《2026광주비엔날레: 너는 네 삶을 바꿔야 한다》작품론
16회 광주비엔날레: 너는 네 삶을 바꿔야 한다 2026 9.5 – 11.15



안젤라 고: 맞물리고 떨어지며 낯선 이미지가 되는 손



김선경



손은 일반적으로 무언가를 제작하는 도구로 여겨진다. 한편 올해 광주비엔날레 본전시관의 다리 위에서는 손 자체를 재료 삼아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퍼포먼스가 펼쳐진다. 시드니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무용수이자 안무가 안젤라 고(Angela Goh, 1986-)의 작품 〈크래프트 Craft〉(2026)이다.


비엔날레 본전시관의 제2전시장과 제3전시장을 잇는 다리 위에서 두 명의 퍼포머가 손을 맞댄 채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음악도 대사도 없는 퍼포먼스는 주변의 소음과 광주의 도시 풍경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관람객의 시선은 호흡을 맞추며 천천히 움직이는 두 퍼포머를 따라가다 어느새 맞닿은 손의 미세한 움직임에 꽂히게 된다. 


두 퍼포머는 서로의 손을 정교하게 맞물려 하나의 손가락이 길게 연장된 듯한 착시를 만들어낸다. 가령 한 퍼포머가 엄지손가락을 접어 검지와 중지 사이로 내밀고 다른 퍼포머의 손가락을 주먹 쥐듯 감싸는 방식이다. 일정한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관람객에게는 두 사람의 손이 하나로 이어져 긴 손가락이 자라난 것처럼 보인다. 퍼포먼스 후반부에 두퍼포머는 서로 떨어져 두 전시장을 잇는 다리의 양쪽 끝으로 이동한다. 그곳에서 이들은 다시 손가락이 길게 연장된 듯한 착시를 만들어낸다. 다만 이번에는 두 사람이 함께하는 대신 각자의 양손을 이용한다.


고는 비엔날레 개막에 앞서 두 차례 한국을 방문하여 한국 퍼포머들과 함께 〈크래프트〉를 준비했다. 퍼포먼스는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두 시간 간격으로 하루 네 차례 진행된다. 작가가 단독으로 출연하거나 다른 퍼포머와 함께 참여한다. 때로는 작가 없이 퍼포머들만 등장하기도 한다. 한 명의 퍼포머가 출연할 때는 하나의 신체가 변형되며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반면 두 명이 함께할 때는 서로 다른 두 신체의 결합을 중심으로 새로운 이미지가 만들어진다. ‘크래프트’는 ‘공예’나 ‘숙련된 기술’을 뜻하며 동사로는 ‘정교하게 만들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제목이 가진 의미처럼 퍼포먼스는 손가락을 맞대고, 감싸고, 구부리는 움직임을 세심하게 조율하며 마치 서로 다른 부품을 조립하듯 공들여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1960년대 이후 현대미술에서는 신체를 재현의 대상으로 다루는 데 그치지 않고 퍼포먼스와 같이 작가의 신체를 직접 작품의 장으로 삼는 실천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신체와 공간의 관계 역시 중요한 탐구 대상이 되었다. 고 또한 신체가 주변 공간과 관계를 맺는 방식에 주목한다. 특히 작가는 특정 공간에서의 경험한 감각이나 연상된 이미지를 안무에 반영하기도 한다. 


고의 전작 〈Axe Arc Echo〉(2023)는 공간에 대한 작가의 감각이 퍼포먼스로 발현된 대표적인 사례이다. 퍼포먼스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석유 저장 시설로 건설된 지하 벙커를 무대로 펼쳐졌다. 고는 벙커를 처음 방문했을 당시 마치 아래로 끝없이 이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나선형 계단에서 선형적인 시간의 흐름을 벗어나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작가는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안무를 구성하고 퍼포먼스로 발전시켰다.1) 작품에서 신체를 비틀거나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이동하는 움직임은 관객의 익숙한 방향감각을 교란하며 시작과 끝을 가늠하기 어려운 시간의 감각을 형성한다. 


〈크래프트〉에서 고는 광주비엔날레 본전시관의 다리가 지닌 이중적인 의미에 주목한다. 제2전시장과 제3전시장을 잇는 다리는 두 공간을 연결하는 통로인 동시에 각각의 공간을 구분하는 경계이기도 하다. 이러한 연결과 분리의 양상은 퍼포머들의 움직임에서도 나타난다. 서로 다른 두 손이 맞물리며 만들어내는 착시 효과는 일시적인 결합을 통해 성립하며 두 손이 떨어지는 순간 사라진다. 


고는 연결과 분리처럼 상반되어 보이는 요소의 대립을 해소하거나 하나의 개념으로 환원하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 다른 두 성질을 함께 사용하여 안무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양가성은 퍼포먼스와 공간의 관계에서도 드러난다. 손의 미세한 움직임으로 이루어지는 〈크래프트〉의 안무는 내밀하고 섬세하지만 퍼포먼스가 펼쳐지는 다리는 별다른 가림막 없이 광주의 도시 풍경을 향해 열려 있다. 이처럼 작품에는 신체 움직임의 내밀함과 공간의 개방성이 공존한다. 


대립되어 보이는 두 개념에 대한 고의 관심은 그의 이전 작업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Scum Ballet〉(2017)에서 고는 여성의 신체에 대해 존재하는 양가적인 인식에 주목한다. 여성의 신체는 역사적으로 아름답고 신비로운 존재로 이상화 되어왔다. 하지만 동시에 이해하거나 통제할 수 없는 위협적인 존재로 상상되어 오기도 했다. 고는 이러한 이중적인 인식을 우아하고 섬세한 움직임과 위협적이고 폭력적인 행위를 결합한 안무를 통해 드러냈다.2) 


무용수가 자신의 신체를 움직이며 무용을 직접 체험하는 것과 달리 관람객은 그 움직임을 외부에서 바라보는 방식으로 무용을 경험한다. 무용수로서 춤을 직접 체험하는 데 익숙한 고는 오랫동안 그와 반대되는 관람의 경험에 의문을 품어왔다. 신체적 수행이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무용이 직접적인 움직임을 수반하지 않는 관람을 통해서는 어떠한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질문해 온 것이다. 3) 


고는 이러한 질문에 나름의 답을 찾은 듯하다. 무용 관람은 타인의 움직임을 바라보는 수동적인 경험에 머무르지 않는다. 오히려 그 움직임이 만들어낸 이미지를 통해 관람객이 세계와 관계 맺는 또 다른 방식이 열릴 수 있다. 〈크래프트〉는 얼핏 스트레칭처럼 보일 수 있는 동작을 낯선 이미지로 바꾸어 가는 안무로 구성되어 있다. 고가 낯선 이미지를 만들어냄으로써 관람객에게 기대하는 것은 특정한 의미의 발견이 아니다. 그는 이 경험이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을 넓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4) 




김선경 (2000-) sunnycat506@gmail.com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미술사학과 석사 과정을 수료하였다. 한경 아르떼(Arte) 매거진에 온라인 칼럼 ‘미술관이 던지는 질문들'을 연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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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가 홈페이지 〈Axe Arc Echo〉 작품 설명 참고. https://angela-goh.com/works/axe-arc-echo/ (2026년 10월 17일 검색)
2) 작가 홈페이지 〈Scum Ballet〉 작품 설명 참고. https://angela-goh.com/works/uncanny-valley-girl/ (2026년 10월 17일 검색)
3) “Interview with Angela Goh about Uncanny Valley Girl”, Spring (2019. 05. 21)
https://springutrecht.nl/en/what-do-we-project-onto-and-into-this-absence-fantasy-horror-desire-and-so-much-more/ (2026년 10월 19일 검색)
4) 광주비엔날레, “ARTIST INTERVIEW 안젤라 고 Angela Goh” 영상인터뷰. https://share.google/huGAn4qxxmSRPwTSS (2026년 10월 19일 검색) 




안젤라 고, 〈크래프트〉(2026), 퍼포먼스, 15분, ©김선경




안젤라 고, 〈크래프트〉(2026), 퍼포먼스, 15분, ©김선경




'미술사와 비평'은 미술사와 비평을 매개하는 여성 연구자 모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