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기로는 김달진미술연구소에서 백년전에 야유회를 다녀왔다는 얘기를 들었었다. 물론 그때는 일제강점기가 막 시작되는 시기였으니 야유회라는 행사 자체가 매우 어려웠을 것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백년이 지난 5월 초의 어느날 김달진미술연구소는 다시 한 번 야유회를 가졌다. 핼리혜성의 주기보다 더 긴 야유회의 주기에 딱 맞춘 난 참 운좋은 녀석이라는 생각과 함께 설렘을 안고 야유회의 모임장소이자 제1목적지인 삼성미술관 리움에 도착했다.

직원 모두 day-pass권을 사서 자유롭게 관람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처음 1시간이면 충분히 둘러보겠다는 생각과는 반대로 모든 전시를 보다보니 2시간을 훌쩍 넘겼다. 고미술부터 시작해서 기획전시인 코리안 랩소디까지 시간 가는 줄을 모르는 채로 관람을 즐겼다.

그동안 흥미를 가졌던 고미술관에서는 이미지로만 보던 국보, 보물들이 있었는데 저거 하나면 팔자필까라는 생각도 잠시 도슨트에서 자기와 도기에 대한 차이와 청화, 백자, 철자 등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유익한 시간을 보냈다.



개인적으로는 오지호의 색감이 인상적인 <사과밭>, 서용선의 강렬한 <동학농민운동>, 유니크한 장욱진의 그림들이 좋았다. 아쉬었던 점은 리움의 상징물이라 할 수 있는 야외조각상인 루이스 부르주아의 <마망>이란 작품은 생각보다 너무 커서 관람객들에게 위압감을 주어 조각이라기 보다는 구조물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르긴 몰라도 상당한 비용을 치렀을 텐데 차라리 우리나라 조각품들을 구입하여 설치했더라면 어땠을까라는 무지한 생각도 하였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미술관의 상징물이 굳이 해외작가의 작품일 필요는 없지 않을까.

점심을 먹고 소장님은 다른 업무로 떠나고 제2코스이자 메인코스인 남산으로 출발하려는 순간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는데 역시 소풍과 야유회의 백미는 비오는 날인 것이다.

금방이라도 비가 올 것 같은 출근길에 일기예보보다 우리 엄마의 '오늘은 비가 오지 않는다'라는 말에 더 신빙성을 갖는 나로서는 과감히 우산을 가지고 출근하지 않아, 퇴근길에 비를 쫄딱 맞아 들어오는 일이 제법 있었지만, 야유회 당일도 예외는 아니어서 엄마의 얘기를 듣고 우산을 갖고 나가지 않았던 것이다.

있지도 않은 애교를 부리며 팀장님의 우산을 절반 정도 차지 하면서 남산을 등산하는 동안 어쩌면 엄마보다 일기예보가 더 정확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잠깐하였다.



최근 25년전에 왔던 남산과는 많이 달라졌지만 등산로는 상당히 잘 꾸며져 있어서 올라가는 내내 기분은 상쾌하였다. 올라가는 동안 친환경 전기버스와 케이클카라는 문명의 이기들이 있었지만 등산의 목적은 주변 풍광을 보면서 올라가는 것 아니던가. 정상에 올라서서 바라본 서울 전경은 장관이었지만 왠지모를 서운함이 든 것도 사실이었다.

서울의 상징이랄 수 있는 남산이 서울의 어느 도시 풍경과 다를바가 없었다. 물론 한쪽에 긴급연락 도구로 쓰이던 조선시대의 봉수대와 성곽들이 있었고 새롭게 성곽을 개보수하고 있었지만, 숭례문을 포함하여 있는 것들을 먼저 잘 보존 하는것이 더 중요한 것은 아닌지.
남산에서도 자유로운 시간을 가지며 사진을 '많이' 찍었으나 뒷모습과 원거리 사진만 나온 것은 상당한 외압에 시달린 결과라고 얘기 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하산하고 명동의 한 백화점에서 전시중인 로버트 인디애나의 작품을 둘러보고 난 후, 여정을 풀겸 커피숍에 자리를 잡았다. 다같이 초췌한 모습들을 한 상태로 커피를 마시고 마지막 힘을 짜내며 수다를 떨고 내일 출근을 걱정하며 다음 백년 후에 있을 야유회를 기약하면서 즐거운 하루를 마무리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