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혜주, 생명의 경계를 탐구하다: 《엔도스코페이아》


전시장 1층에서 볼 수 있는 작가 영상 

2026년 6월 19일 오전 11시, 송은에서 전혜주 작가의 개인전 《엔도스코페이아 Endoskopeia》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전혜주 작가와 기획자 이현인이 함께 참석해 전시 소개와 지난 작업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고, 이후 전시장 투어와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좌) 전혜주 작가와 (우) 이현인 기획자

전혜주는 2020년 COVID-19를 계기로 공기 중에 떠다니는 미립자와 공생의 생태 관계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작업실 주변 환경을 조사하며 식물과 꽃가루, 먼지 등을 수집한 것이 출발점이었다. 당시의 리서치 결과는 아카이브 형식의 전시로 처음 공개되었고, 이후 우라늄 광물의 정제 과정과 꽃가루가 생물들과 공생하며 퍼져나가는 방식 등, 서로 달라 보이지만 닮아 있는 현상들의 경계를 꾸준히 탐구해왔다. 벌의 날갯짓 주파수를 모방한 진동 장치로 꽃가루가 퍼지는 현상을 재현하거나, 초지향성 스피커를 통해 무인 기술이 인간 삶에 침투하는 방식을 감각적으로 구현하는 등 소리와 기계 장치를 주된 매체로 삼아온 작가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의 전환점이 된 것은 네덜란드 얀 반에이크 아카데미 레지던시 참여였다고 전한다. 세계 꽃 산업의 중심지인 네덜란드에서 식물이 인간의 역사와 국가 간 관계 속에서 어떻게 개량되고 이주해 왔는지를 연구하며, 꽃가루로 잉크를 만들어 천에 프린팅하는 실험을 시도했다. 원예식물과 야생식물을 표본화·디지털화한 뒤 AI와 결합해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생명의 형상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작가는 이 과정에서 자신이 생명을 바라보는 태도가 조금씩 변해왔다고 말한다. 정답을 정해놓고 확인하는 방식으로 작업하지 않는다는 것, 끝이 어디인지 모르는 상태 자체가 작업을 이어가는 동력이라는 것이다.


작업 일부를 설명 중인 전혜주 작가

전시 제목 '엔도스코페이아'는 내시경(endoscopy)의 어원에서 출발한다. 인간은 외부 세계를 과연 막아낼 수 있는지, 자연의 일부인지 아니면 자연에 반하는 존재인지에 대한 물음이 이번 전시의 핵심이다. 작가는 습기를 싫어한다고 밝혔다. 그런데 누군가로부터 "사람이 있으면 습기가 잡힌다"는 말을 듣고, 인간이 자연에 반대되는 존재인 건지 묻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물음이 면역계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같은 생명임에도 자연을 배척하는 시스템을 몸 안에 갖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결국 우리 몸은 소화관과 배설 기관을 통해 외부와 끊임없이 순환한다는 것—외부를 차단하려 하지만 실상은 바깥과 계속 섞이며 살아가는 존재라는 역설이 이번 전시의 주제가 되었다.




전혜주, 〈아카이브 테이블〉, 2020-2025, 수집된 자연물, 레진, 가변크기.


전혜주, 〈아카이브 테이블〉 일부.

전시장 입구에는 그동안의 수집과 조사 과정을 압축한 아카이브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이전 작업에서 비중 있게 다루었던 표본 설치의 규모를 이번에는 의도적으로 줄였다. 작가는 수집한 이야기들을 자신의 언어로 어떻게 재구성하느냐에 집중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진열장 안에는 하나의 식물을 16개 조각으로 분절하고, 그 사이사이에 드로잉과 텍스트 6점을 끼워 넣었다. 관객이 직접 꺼내고 다시 집어넣으며 순서를 탐색할 수 있도록 열린 구조로 구성했다.


전혜주, 〈망상된 풍요〉, 2025/2026, 거울, 금속 주조, 식물 도금, 52×60×92.5.

안쪽 공간으로 들어서면 실크스크린 패턴 작업과 망원경 작품 〈망상된 풍요〉(2025/2026)를 마주하게 된다. 〈망상된 풍요〉는 식물이 거울 속에서 무한히 반사되어 풍성해 보이는 정원의 풍경이, 실상은 같은 유전자를 복제한 생명 다양성의 빈곤한 상태일 수 있다는 것을 은유한다. 


전혜주, 〈결박의 패턴들 – Part 1-4〉, 2025/2026, 90×150*4.

이어서 벽면에 설치된 실크스크린 작업은 그리스 신화에서 전쟁의 신 아테나가 탄생하는 장면, 동족 섭식과 변이에서 비롯된 생명의 출현을 시작으로, 씨를 떨어뜨리지 못하는 돌연변이 식물을 인간이 발견하면서 농경이 가능해졌다는 이야기, 그리고 거미줄과 이슬, 벌처럼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줄곧 공존해 온 존재들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같은 패턴을 몇 도씩 찍어내는 방식으로 밀도를 달리하며, 반복과 복제의 논리가 자연 안에서도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영상 작품은 동물·식물·인간·벌레·기후가 뒤섞여 어떤 생명인지 구분할 수 없는 상태를 담아낸다. 멸종한 종의 형상을 살아남은 종이 몸에 새기고 있다는 생태학적 개념에서 영감을 얻었다. 

건물 외벽 창문에는 꽃가루로 만든 안료로 실크스크린을 한 작품 〈레퓨지아〉(2026)가 설치되었a다. 레퓨지아는 급격한 환경 변화 속에서도 생명이 살아남은 피난처를 뜻하는 생태학 용어로, 유리 외벽에 내려앉아 정착한 꽃가루를 생존의 은유로 담아낸 작품이다.


전혜주, 〈레퓨지아〉, 2026, 꽃가루, 실크스크린, 가변크기.


작가가 전시에서 가장 몰입적인 경험을 유도하는 작품은 〈대기 장소〉(2026)다. 짙은 안개가 가득 찬 어두운 방 안에서 관객은 시각보다 청각에 의존해 공간을 탐색하게 된다. 천장까지 올라오는 가벽 뒤에 포그머신을 숨겨두었고, 스모그의 밀도는 공황을 유발하지 않으면서도 공간감을 지울 수 있는 수준으로 세밀히 조율되었다. 초지향성 스피커에서는 입자, 인간, 건축가이자 의학 전문가가 등장하는 대본이 흘러나오는데, 관객이 이동하는 위치에 따라 들리는 목소리가 달라지도록 소리의 방향을 설계해 자연스럽게 동선을 유도한다. 작가는 정보를 전달하는 강의가 아닌, 먼지가 귀에 속삭이는 듯한 감각적 경험을 원했다고 말한다. 작곡가, 공간 디자이너, 사운드 엔지니어와의 긴밀한 협업으로 완성된 공간으로, 대본을 먼저 쓴 뒤 녹음과 음향 설계, 공간 구성의 순서로 작업을 진행하며 수차례의 테스트를 거쳤다. 대본의 결론은 이렇다. 오염을 직면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이상 생존은 불가능하다. 결국 우리 몸은 외부를 받아들이면서 변화하는 상태다. 이 공간을 나서면 조용한 열람실 '보이드룸'에서 대본집을 직접 읽으며 방금 들었던 이야기를 되짚어볼 수 있다.

전시의 마지막 공간에는 2022년에 발표한 작업 〈All Over〉가 자리한다. 대전 산내 골령골은 6·25 전쟁 당시 7천여 명이 학살되어 매장된 곳으로, 아직 전체 발굴이 완료되지 않은 유적지이다. 이곳에서 채취한 발굴토 속의 미립자를 특수 현미경으로 촬영한 이미지들과, 발굴 지형을 디지털 스캐닝해 만든 3D 프린팅 조각, 발굴 현장을 담은 애니메이션 영상으로 구성된다. 70년간 땅 속에 갇혀 있던 존재들이 마셨던 공기, 함께 자라났던 생물들이 내뿜었던 모든 것들을 재소환한 작업이다.



전혜주, 지하 2층 전시 전경.


2020년 미립자에 대한 첫 관심에서 시작해, 네덜란드에서의 식물 연구를 거쳐, 이번 전시에서 인간의 몸과 인공적 환경 시스템으로 돌아오는 흐름은 작가 스스로도 우연히 이어진 연결이라고 말한다. 그 연결이 어디로 향할지 모른다는 것, 그 불확실함이 작업을 계속하게 만드는 이유라는 것이다. 이 전시는 눈에 보이는 가시적 세계와 보이지 않는 비가시적 세계가 분리된 것이 아니라 서로 뒤섞인 채 언제나 우리의 곁을 맴돌고 있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