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0여 년 전인 13세기 말 마르코 폴로(Marco POLO, 1254-1324)가 24년간 동양을 여행하면서 만났던 놀라운 여정을 적은 동방견문록이 글로벌 사우스 또는 동양을 유럽에 알렸다면, 1895년 처음 열린 베네치아비엔날레는 동시대 미술을 들여다보는 창으로 지구촌의 모든 이들을 불러들였다.


베네치아비엔날레 포스터



2026년 제61회 베네치아비엔날레는 130년 역사상 최초로 아프리카 출신 흑인 여성 총감독인 큐레이터 코요 쿠오(Koyo KOUOH, 1967-2025)가 강조했던 “낯설음, 우울함, 슬픔”을 통해 “단조로(In Minor Keys)”란 주제로 동시대 미술의 화려한 구호와 거대한 역사의 재해석에서 벗어나, 연약한 현재의 균열과 불안에 뿌리를 둔 내면의 소리, 치유에 집중하고자 했다. 그러나 현실은 제도적 한계와 현재의 잔혹한 지정학적 현실과 불가피하게 충돌하며, 오히려 적나라하게 “단조”가 아닌 장조와 단조라는 기존의 조성 체계를 완전히 파괴하고, 모든 불협화음을 아무런 제한 없이 해방한 “무조음악(Atonal Music)”이 되어버렸다.

비엔날레는 자르디니(Giardini)의 29-30개관, 아르세날레(Arsenale)의 25개관, 베네치아 시내 전역에 46개 국가관이, 90% 이상이 현존작가로 구성된 국제전(주제전)은 총 111명의 세계적인 작가와 단체가 참여해, 이전의 사후 아카이브 중심의 전시와 뚜렷하게 구분되었다. 

특히 국가관은 각각의 긴장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냈다. 이스라엘과 러시아가 영적 신비주의와 민속 축제를 내세워 직접적 대립을 회피하는 동안, 정치적인 이유로 남아프리카공화국이 국가관을 폐쇄하자 작가 가브리엘 골리앗(Gabrielle GOLIATH, 1983-)이 자력으로 전시한 비디오 설치 작업은 비엔날레의 중심 아닌 주변부에서 가장 날카로운 정치적 발언을 드러냈다. 또 심사위원단 집단 사퇴와 황금사자상 폐지, 관객 투표로 대체된 ‘방문객 사자상’은 제도적 균열을 제도 자체가 더 이상 봉합할 수 없음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충실한 일부 작품은 제도적 모순과 부조리적 유머 등등을 통해 각기 다른 방식으로 제도적 기억과 지정학적 현실의 균열을 드러내며 파국 속에서 예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들 작품은 더 이상 비엔날레가 일관된 ‘문화 올림픽’같은 기능을 발휘할 수 없다는 현실을 증명하면서, 오히려 동시대 미술이 주변부의 개입과 틈새에서 진정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시켜 주었다.

한국관은 국가라는 딱딱한 경계를 허물고, 상처받은 이들이 안전하게 숨을 수 있는 피난처인 둥지이자 연대와 치유가 일어나는 저항의 기지 즉 요새로서의 새로운 공동체를 보여 주고자 했다. 이는 “국가주의적 틀을 흔든 의미 있는 균열”이란 긍정과 함께 국제적인 비엔날레에서 돋보이고자 지나치게 난해한 이론과 철학적 용어를 사용하는 ‘지적 허영심(Intellectual vanity)’에 의존해, 정작 미술의 본질인 시각적 울림과 직관적 소통을 놓쳤다는 지적도 있었다. 필자의 눈에도 섣부른 “깨어있음(Woke)”에 대한 집착이 한강의 텍스트나 작품 그리고 소수자 연대에서 짜깁기하듯 가져왔다는 느낌이 강했다. 결국 “단조로”는 치유의 장이 아니라 분열을 인정하는 장으로, 관객은 소비자가 아니라 느린 경청자가, 예술은 제도적 선언이 아닌 틈새의 저항으로 빛났다. 따라서 비엔날레의 의미는 통합된 구조가 아닌, 그 구조가 무너지는 순간 드러나는 예술의 힘에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 점에서 베네치아비엔날레는 물론 많은 지구상의 비엔날레가 더 이상 과거의 영광을 재현할 수 없음과 그 잔해 속에서 새로운 미학적 가능성을 발견하게 해 주었다.


- 정준모(1957- )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1996-2006), 2011 청주공예비엔날레 총감독 등 역임.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 공동대표. 국립근대미술관을 원하는 사람들의 모임 상임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