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출범한 광주비엔날레는 미술계 관계자뿐 아니라 많은 관객들이 찾는 세계적인 미술축제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일반 관객이 방대한 규모의 전시를 온전히 즐기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다.
본 연재는 《2026 16회 광주비엔날레》(2026.9.5-11.15)와 관객들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을 좁히고자 하는 것이 기획의 의도이다. 따라서 본 지면에서는 ‘광주비엔날레’가 아닌 참여작가들의 ‘개별 작업’을 다루게 될 것이다. 이 글이 관객들로 하여금 작가들의 작품세계에 보다 가까워지는 경험을 선사하기를 기대한다. 



《2026광주비엔날레: 너는 네 삶을 바꿔야 한다》작품론
16회 광주비엔날레: 너는 네 삶을 바꿔야 한다 2026 9.5 – 11.15



라픽 그레이스: 군중 속 선명해지는 개인의 감각



김유영



축제에 모인 사람들은 거리의 분위기, 리듬을 공유하며 하나의 군중을 이룬다. 그러나 같은 공간에서 같은 리듬으로 움직인다고 해서 모두가 동일한 경험을 하는 것은 아니다. 제16회 광주비엔날레 《너는 내 삶을 바꿔야 한다》에서 마주한 라픽 그레이스(Rafik Greiss, 1997-)의 〈가장 긴 잠 The Longest Sleep〉(2024)은 이러한 집단적 경험과 개인의 신체적 몰입 사이의 관계를 드러낸다.1) 화면 속 인물들은 함께 축제를 이어가지만, 군중의 움직임을 따라갈수록 각자의 행위에 몰두하는 개인의 존재감이 두드러진다. 함께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은 과연 같은 시간을 경험하고 있는 것일까?


프랑스 파리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이집트계 현대미술 작가 라픽 그레이스는 사진, 조각, 영상 등 여러 매체를 넘나들며, 사물과 이미지의 가변성, 기억의 불안정성에 관심을 두고 있다. 그의 작업에서 시간은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선형적인 흐름이 아니라, 축적되고 사라졌다가 예기치 않게 감각이나 잔상으로 되살아나는 순간들로 이루어진다. 중앙의 큰 화면과 그 양옆에 배치된 두 개의 작은 화면으로 구성된 3채널 비디오 작업이다. 작은 화면들은 중앙 화면에 나타난 장면 일부를 확대하여 보여준다. 또한 기억의 단편들처럼 하나의 사건, 인물에 집중하다가도 영상과 영상 사이에 2~3초 정도의 검은 화면과 정적이 흐르는데 이를 통해 작가의 시간에 대한 개념을 엿볼 수 있다.


 〈가장 긴 잠〉은 이집트에서 수피(Sufi) 성인들을 기리는 연례 축제 마울리드(Mawlid)가 진행되는 거리를 포착한 장면들로 이루어진다. 수피 성인들은 신과 신자들을 잇는 중재자로 숭배된다. 축제 기간 동안 사람들은 밤새 함께 기도하고 노래하며 몸을 흔들고 선회한다. 이러한 종교적 실천은 개인의 내면에만 머무르지 않고 음악과 움직임을 공유하는 공동체적 행위로 이루어진다. 그레이스는 약 두 달 동안 현지 공동체와 시간을 보내며 축제의 장면들을 기록했다. 영상에서 계속해서 등장하는 것은 원형의 움직임(이미지)이다. 영상에서는 회전하는 형형색색 불빛의 놀이기구와 몸을 흔들거나 선회하는 사람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개인과 군중의 움직임 놀이기구의 원형 궤적이 이어지면서 화면 속 움직임은 점차 더 큰 규모의 순환을 연상시킨다.
화면 속 계속되는 회전 이미지는 관람자들에게 완결된 출발점이나 도착점을 제시하지 않는다. 하지만 같은 동작이 반복된다고 해서 이 움직임은 항상 동일하지 않다. 작업 속 사람들의 움직임 속도와 균형, 회전을 지속하는 동안 신체의 감각이 달라지며, 때로는 서로 다른 순간에 촬영된 장면들이 영상 속에서 하나의 흐름처럼 연결된다. 이처럼 〈가장 긴 잠〉은 반복되는 동작을 통해 선형적인 시간보다 서로 다른 시간에 이루어진 움직임이 영상 속에서 겹쳐지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작업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이러한 움직임이 집단으로 이루어지면서도 각자의 신체에서 시작된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서로 가까이 모여 같은 리듬에 몸을 맡기지만, 화면 속에서 각자의 움직임에 몰두하는 모습은 때때로 주변과 단절된 듯 보인다. 특히 중앙의 큰 화면과 장면 일부를 확대한 두 개의 작은 화면은 군중과 개인을 서로 다른 규모에서 바라보게 한다. 관람자는 집단의 움직임을 하나의 흐름으로 받아들이면서도, 그 흐름을 구성하는 개별적인 신체에 주목하게 된다. 각자의 몸으로 지속되는 움직임이 모여 공동의 의례를 이룬다고 해서, 그 안에서 개인이 경험하는 감각까지 하나로 수렴하는 것은 아님을 깨닫게 된다.


이때 작업을 바라보는 관람자의 위치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가장 긴 잠〉에서는 영상 속 사람들과 관람자 사이에 또 다른 거리가 발생한다. 관람자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몸의 움직임과 표정, 빛과 소리, 그리고 그 장면들이 이어지는 방식이다. 종교적 몰입의 모습을 지각하지만, 그 움직임을 수행하는 사람이 실제로 무엇을 느끼는지까지 알 수는 없다. 그레이스는 타인의 경험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는 환상을 제공하기보다, 그 경험에 다가가려는 관람자 자신의 감각을 의식하게 한다. 앞서 말했듯, 영상 속 움직임이 검은 화면과 정적으로 중단되는 순간, 관람자는 이전까지 이어지던 축제의 리듬에서 잠시 벗어난다. 이러한 단절은 화면 속 인물들의 몰입을 그대로 공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편집된 장면을 외부에서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환기한다. 


그렇다면 끊임없이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여주는 작업의 제목은 왜 ‘가장 긴 잠’일까. 잠은 일반적으로 움직임이 멈추고 의식이 가라앉는 시간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이 영상에서 사람들은 잠들지 않은 채 밤새 몸을 움직인다. 어쩌면 여기서 잠은 정지된 상태보다 익숙한 시간의 흐름과 일상적 의식에서 잠시 벗어나 무언가에 몰입하는 상태에 가까울 것이다. 다만 그레이스는 이러한 변화가 실제로 일어났는지, 참여자들이 어떤 초월적 경험에 도달했는지를 명확히 보여주지 않는다. 〈가장 긴 잠〉에서 결국 남는 것은 어떤 초월적 상태에 도달한 결과가 아니라, 타인과 리듬을 공유하면서도 각자의 몸으로 움직임을 지속하는 과정이다. 



김유영(2000) sis0003220408@gmail.com
이화여자대학교 미술사학과 석사과정 재학 중. 불교미술을 공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전통미술과 현대미술이 교차하는 지점에 주목하며, 종교적 이미지와 관념이 새로운 매체와 공간 속에서 재해석되는 방식에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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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라픽 그레이스는 프랑스 파리와 이집트 카이로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이집트계 현대 미술 작가이다. 주요 단체전으로는 광주 비엔날레(2026), 이스탄불 비엔날레(2025), 코펜하겐 시미안(2025), 취리히 쿤스트할레(2024), 뉴욕 스위스 인스티튜트(2023) 등이 있으며, 개인전은 파리 발리체 헤르틀링(2024,2021)에서 개최되었다. 그의 작업은 휘트니 미술관, 피노 컬렉션, 루이 비통 컬렉션, 라파예트 앙티시파시옹 등 유수의 컬렉션에 소장되어 있다. 

참고문헌
제16회 광주비엔날레. 「《너는 네 삶을 바꿔야 한다》 가이드」. 제16회 광주비엔날레 ⟪너는 네 삶을 바꿔야 한다⟫』. 2026. https://youmustchangeyourlife.kr/#guide-to-you-must-change-your-life (2026년 10월 21일 접속).




라픽 그레이스(Rafik Greiss), 〈가장 긴 잠 The Longest Sleep〉, 2024, 

디지털 6K 비디오, 3채널, 컬러, 사운드, 9분 36초, ⓒ 김유영



라픽 그레이스(Rafik Greiss), 〈가장 긴 잠 The Longest Sleep〉, 2024, 

디지털 6K 비디오, 3채널, 컬러, 사운드, 9분 36초, ⓒ 김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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