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송문화 1부전시 마지막 날 보고 왔습니다. 간송미술관에서 벗어나 DDP에 전시된 작품들을 보니 좀 낯설었는데. 간송미술관 전시장 케이스가 통째로 들어와 있는 코너를 보고나니. 아 그렇구나. 간송이구나. 그런 낯익음이 들었습니다.







많은 소장품이 전시되어있었는데 기억에 남는 것들을 추려봅니다. 

현재 심사정의 <촉잔도권>은 좁은 폭이 58cm 넓은 폭이 818cm 길이의 엄청나게 큰 작품이었습니다. 지본담채로 종이에 그린 그림이고 옅은 색이 사용되었어요. 7촌 조카 심유진의 부탁으로 그리셨는데, 62세 때 <촉잔도권>을 그리시고 63세로 타계하셨다고 합니다.  서촉으로 가는 길 '잔도'를 그린 그림인데 서촉은 현재의 사천성으로 최근에는 쓰촨이라고 쓰입니다. 삼국지에서 유비가 세웠던 '촉한'이 위치했던 곳인데 땅은 기름지고 좋은 곳이지만 촉으로 들어가는 길이 굉장히 험했다고 해요. 벼랑이나 낭떠러지 같은 위험한 길에 폭이 좁은 길을 놓은 곳을 '잔도' 라고 합니다. 긴 그림을 자세히 훑다 보면 벼랑과 낭떠러지 사이로 가파르고 좁은 길을 가는 사람들과 동물들이 보입니다. 기암괴석 사이에 숨은 마을들도 보이고 속속 숨어있는 이야기들이 참 재밌어요.

고려청자 하면 가장 먼저 연상되는 유물일 <청자상감운학문매병>도 전시되고 있었습니다. 상감기법은 자기의 표면 파내고 백토흑토 채운 다음 매끈하게 다듬어서 유약을 발라 굽는 기법인데 미술시간에 깜박 졸았을 사람을 위해서 '상감기법'에 대한 설명도 함께 있었으면 좋았겠다 싶었어요. 오디오가이드 없이 보다보니 상감기법이 그게 맞나 전시 보면서 좀 가물가물 했습니다. 마치 그림으로 그린듯한 곡선으로 빼곡하게 구름과 학들이 아름답게 상감되어 있었습니다.  

또 기억에 남는 유물이 <백자희준>이었는데 전시된 유물은 '소' 모양이었어요. '희준'이란 제례에서 감주를 담아 봄, 여름에 초헌례를 지낼 때 사용하는 제사용 그릇이라고 합니다. 이 유물이 기억에 남았던게 '희준'을 실제로 소 모양으로 만들었는데 얼굴이 너무 귀여웠어요. 양 뿔이 있는데 하나는 휘었고 눈은 차분해 보이는 유물이었습니다.

'구락부'가 클럽이라는 거 아셨나요? 구락부. 이게 대체 뭘까 하다가 예전엔 '클럽'을 구락부라고 썼다고 합니다. 유럽을 구라파라고 부르거나 남캘리포니아를 남가주라고 훈음차(한문음차)해서 사용했다고 해요. 간송 전형필 선생은 경성미술구락부에서 많은 경매에 참여하셨는데 경성미술구락부 최고낙찰가였다는 <백자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병>도 전시되고 있었습니다. 이름이 엄청 길지만 나눠보면 쉬워요. 백자인데 청화, 철채, 동채가 사용 되었고 초, 충, 난, 국이 그려져 있는 문병 이라는 의미입니다. 청화는 푸른 안료로 그림을 그렸다는 뜻이고 철채, 동채는 철가루와 구리가루로 색을 냈다는 의미입니다. 자세히 보면 구리가루가 들어간 부분이 더 붉은 빛을 띕니다. 풀, 벌레, 난 국화가 그려져 있는데 이게 그냥 그려진 게 아니고 살짝 양감하여 그 위에 칠했어요. 진짜 엄청난 작품이라 절로 '우와, 이건 진짜 국보급이네' 라고 생각했더니. 정말 국보였습니다. 백자의 미를 이 유물 하나로 끝내주마 하는 그런 멋진 유물이었습니다. 크기도 꽤 큰데 좌우대칭이 거의 맞고 오래된 백자라 유약이 갈라진 많은 잔금이 있는데 그 잔금마저 예뻤습니다.  쭈그리고 앉아서 정말 한참을 보다 나왔습니다.   

<하화청정>이라고 붉은 연꽃 위에 짝짓기중인 잠자리와 고추잠자리를 땡그란 귀여운 눈으로 그린 세밀화 같은 섬세한 그림이 있었는데 캡션을 확인하니 단원 김홍도. 도화서 화원의 그림으로서는 아마 이만큼 정교하고 정밀한 그림이 있을까 싶었습니다. 연잎이 말라가는 묘사도 엄청났어요. 화원이 그린 그림과 문인화는 뭐랄까 그림을 그리는 기법과 연구에서 어떤 목적? 목표가 다르다고 생각하는데 그림을 업으로 삼았던 사람이 추구한 어떤 목표 같은 것이 드러나는 그림이었어요. 그런데도 동그랗게 그려진 잠자리들의 눈은 너무도 귀여웠습니다. 짝짓기 중인걸 그리니 왜 이런 장면을 그리느냐고 쳐다보는 듯 했어요.

추사의 제자였던 침계 윤정현(이조판서)이 자기 호 <침계>를 써달라고 스승님에게 부탁해서 30년 만에 받은 글씨가 전시되고 있었는데. 종이도 염색에 금박이 들어있고 크기도 엄청 크고 호방하게 쓰신 작품이었습니다. 30년 만에 스승님께 이런 글씨를 받다니 분명 감격스러웠을것 같아요.



영국인 변호사였던 존 개스비가 처분한 컬렉션을 사들인 <청자양각도철정형향로>가 있는데 '도철'이라는 동물은 중국 신화에 등장하는 괴물로 몸은 소나 양이고 뿔이 굽었고 호랑이의 이빨에 사람의 얼굴과 손톱을 가진 괴물입니다. 청자로 만든 발이 셋 달린 정형향로에 돋을새김(양각)으로 '도철'을 표현한 유물인데 도철을 어떻게 표현했을까 보니 문양이라 굉장히 간소화 되었는데 뭔가 엄청 발랄하게 뛰고 있는 네 발 짐승 같아 보였어요. 정형향로 자체는 엄청 진지한 모양의 유물인데 양각된 도철이 너무 귀여웠습니다. 약간 유명브랜드 로고 같아 보이고 하고요.

고려 12세기의 청자 컬렉션들을 보다보니 귀족들이 참 대단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 여말선초 (고려말 조선초)를 다룬 사극이 방영 중이라 고려귀족들이 얼마나 많은 땅을 가지고 세도를 부렸는지 알게 되었는데 전시된 유물에서 연적 하나를 봐도 엄청나게 세심하게 손이 많이 간 작품들이었어요. 어쩌면 그런 무한한 재력을 바탕으로 최상의 작품을 뽑아냈기 때문에 이런 엄청난 유물들이 남을 수 있었다는 생각도 듭니다만 그 당시 백성으로 살았지 않았을까 싶은 스스로를 생각해보니 조선이 건국된 어떤 시대의 흐름이 당연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보통 청자에 상감될 때는 흑토 백토를 고루 사용하는데 <청자상감연지원앙문정병> 이라는 작품은 특이하게 백토만으로 상감을 했습니다. 검은 색이 없이 흰 색으로만 쓰이다보니 버드나무, 갈대가 있는 물가의 풍경인데 굉장히 부드러운 느낌이었어요. 

그리고 전시 마지막부분에 가니 혜원전신첩이 공개되고 있었습니다. 혜원전신첩!!! 혜원전신첩을!!! 30점 전체를 10점씩 세 번에 걸쳐 소개했다고 하는데 야금모행, 월하정인, 삼추가연 기방무사, 유곽쟁웅 등 유명한 작품이 많았어요. 혜원 신윤복의 그림을 참 좋아하는데 뭔가 생활감이 있습니다. 기방에 일없는 풍경이라던가.. 냇가에 빨래하다가 봉변당하는 풍경. 달밤에 두 남녀가 몰래 만나는 장면, 술집 앞에서 갓이고 망건이고 풀어 제끼고 싸움 난 장면 같은 걸 그려주는 사람이 없어요. 삼추가연이라는 작품을 처음 보았는데. 할머니를 두고 남녀가 만나는데 남자쪽은 상반신 탈의에 주섬주섬 바짓단을 묶고 있고 여자 쪽은 고개를 못들고 있는 장면입니다. 국화를 좋아하는 남자가~ 이런 식으로 설명이 있는데 남녀칠세부동석이니 하던 조선시대에서는 참 파격적인 풍경이 아닌가 싶었어요. 

6월 15일로 1부 간송 전형필 전이 마무리 되고 7월 2일부터 2부 보화각 전시가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