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비엔날레 20주년 기념 특별프로젝트의 하나인 달콤한 이슬- 1980 그 후 전시가 8월8일부터 11월9일까지 광주시립미술관에서 열린다.

이 전시는 한국큐레이터협회 윤범모회장이 책임큐레이터와 몇 협력큐레이터로 이루어졌으며 20세기 민중미술을 한 자리에 모은 이번 전시에는 14개국 47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전시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이 일본군에게 끌려가는 모습 등 당시의 고통과 아픔을 직접 표현한 작품 17점도 원화로 소개된다. 윤범모 씨는 "이 작품들의 미술관 전시는 처음이라고"  강조했다.  입구에 걸린 경상남도 양산시에 있는 국내 최대 사찰박물관인 통도사 성보박물관 소장품인 감로도 1점은 전체 주제와 맞닿으며 이 감로에서 달콤한 이슬이 나온 말이다.  


 위안부 시리즈 작품

 주재환 작품

 이세현이 그린 빨간 산수 -  그림 속에 그려진 인물이 누구인지 찾아내는 재미(?)


 정영창이 그린 홍성담


 하정웅 기증작품 중에서

 
 보자기 안에 걸개그림이 있다.






● 국가 폭력 치유의 장
먼저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민중들의 자유를 향한 외침과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조형적으로 승화한 작품들이 대거 등장한다. 광주지역 작가인 임남진의 ‘오월 장막도-님을 위한 행진곡’, 오일 작가의 ‘광주 A’, ‘광주 B’, 김석출 작가의 ‘1980. 5. 27’, 도미야마 다에코의 ‘광주의 피에타’, 강연균 의 ‘하늘과 땅 사이 Ⅱ’, 고삼권의 ‘슬픔’(광주), 송영옥의 ‘5.17-80’ 광주’ 등의 작품을 통해 당시 시대상을 만날 수 있다.
 제주 지역에서는 강요배와 임흥순 작가가 참여한다. 1980년대 대표 민중미술작가인 강요배는 제주 4·3항쟁의 아픈 역사를 드러낸 작품 ‘동백꽃지다’, 임흥순은 제주 4?3항쟁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 ‘비념’을 출품했다.
일본 오키나와 대표작가로 킨죠 미노루, 킨죠 미츠루, 히가 토요미츠 등이참여한다. 오키나와 미군 주둔을 반대하는 사진 작업을 해온 히가 토요미츠는 ‘전군노·오키나와 투쟁’, 오우라 노부유키는 일본 천황 체제를 비판하는 작품 ‘Holding Perspective’을 출품했다. 1950년대 타이완의 백색테러 때 희생됐던 인물로 국내에서 처음 소개되는 작가인 황 중트란은 ‘공포의 검사’를 출품했다. 
 
● 한 자리에서 만나는 20세기 민중미술
나치시절 저항운동을 한 케테 콜비츠와 1930년대 루쉰의 항일 목판화운동, 그리고 1980년대 한국의 민중미술로 이어지는 미술의 사회 참여 역사와 의미가 한눈에 펼쳐진다.
‘달콤한 이슬 - 1980 그 후’전은 나치시절 저항작가 케테 콜비츠와 1930년대 루쉰(魯迅)에 의한 항일 목판화 운동 작품들이 국내 최초로 대거 전시되면서 20세기 미술 운동과 21세기로 이어지는 ‘광주정신’의 재조명을 시도한다. 광주시립미술관 3·4갤러리에는 케테 콜비츠(1867~1945)와 루쉰(1881~1936), 벤 샨(1898~1969) 등의 작품이 선보인다.
 특히 제1·2차 세계대전 당시 가난하고 소외받는 사람들의 슬픔과 절망을 그려온 여류 판화가 케테 콜비츠의 작품 ‘폭동’, ‘배고픔’, ‘희생자들’, ‘살아남은 자들’ 등 49점이 광주에서 첫 선을 보이며 북경 루쉰박물관 소장품인 루쉰목판화 58점도 광주에서 대규모 전시된다. 
 
● 전시개막 파행
그러나 광주비엔날레 측은 이날 장시간에 걸친 회의 끝에 개막식에서 퍼포먼스와 함께 선보일 예정이던 해당 걸개그림의 설치를 유보하기로 했다. 광주비엔날레 측은 '전시 기획자인 윤범모 씨 등 4명의 큐레이터들이 7∼8일 두차례에 걸쳐 걸개그림 설치 여부와 관련한 회의를 가졌으나 큐레이터간 의견이 조율되지 않아 작품 설치를 유보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걸개그림 제작에 참여한 지역 작가들과 시민 50여명은 개막식이 예정된 광주시립미술관 앞에서 가로 30m, 세로 10m 크기의 대형 프린트 작품을 펼치는 퍼포먼스를 벌이며 항의했다. 작품 설치에 대한 논의가 길어지면서 이날 오후 7시 열릴 예정이었던 개막식은 30분 가량 지연됐고, 그나마도 예정됐던 개막 선언과 내빈 축하인사 등은 모두 없애고 국악공연만 5분 가량 진행되는 등 파행이 잇따랐다.
 
결론적으로 광주비엔날레는 확실한 홍보(?)를 했지만 많은 내빈, 출품작가들은 씁쓸한 현장을 목격했다. 참석자 중에는 서울에서 한국화랑협회도 버스를 대절해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