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김병기전 기자 간담회가 12월2일  11시 좀 넘어 있었다. 정윤정홍보관의 사회로 최은주 학예1실장의 인사 '어제 개막식이 있었고 제자가 80세가 넘었고 제자들의 제자에게서도 전화가 오고 있다... 아직도 신작을 제작하고 명징한 정신세계를 유지하고 계신다...'   전시 담당 박혜성 학예연구사가 준비한 PPT 자료로 설명했다.

김병기선생은 '여러 분과 함께한다는게 기쁘다....한국을 떠난 때가 49세이고 떠난지가 49년이 되었다....'

때로는 철학적인 강의를 하고....작품 앞에서는 설명이 끝없이 이어졌고... 질의에는 두 사람의 기자가...

같은 테이블에서 점심식사를 하며 자녀 질문에 아들 둘, 딸 셋을 두셨다고, 12월7일 미국으로 돌아가지만 한국에서 사시고싶다고 하셨다...

화집은 38,000원이다.  

 

이번 전시는 한국근현대미술의 역사를 보여주는 회화 70점과 드로잉 30점을 네 시기로 나누어 전시하였다. 

추상의 실험: 1950년대 중반~1970년대 초 

현전하는 작품이 제작된 시기(1950년대 중반)부터 도미(1965) 1970년대 초까지의 작업의 특징은 그가 일본유학시기부터 매료되었던 추상에 대한 적극적인 실험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50년대 중반 이후 앵포르멜이 한국화단을 휩쓸기 시작할 무렵 국내 다른 누구보다 해외 미술계 동향에 민감하게 반응했던 김병기는 프랑스의 앵포르멜 이론과 실천을 연구하고 이를 자신의 작품에 선택적으로 수용한다. 

 

형상과 비형상의 공존: 1970년대 초~1980년대 말

1970년대 초부터 형상이 강하게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하고, 그가 평생을 걸쳐 천착하게 되는 소재인 정물과 풍경이 캔버스에 뿌리를 내린다. 작가의 시선이 생활 주변에 머물면서 작업실 내의 미술도구, 도자기, 길가에서 꺾어온 들풀, 사라토가 집 주위의 소소한 풍경 등이 화면을 가득 채우게 된다. 구체적인 형상의 등장은 그가 이전부터 추구했던 추상에 대한 정면 대결 혹은 작가로서의 자기모순이 아니라, 추상의 막다른 길에 다다른 그가 더 깊이 발을 들여놓은 숙명의 길이었다.


 

 전시장의 시작으로 걸린 성스러운 삼각 1999년                              십자가의 그리스도 1954년 

 

감각의 분할: 1980년대 말 ~ 2000년대 초 

1980년대 말 도미 후 처음으로 개인전을 치르기 위해 귀국한 이후 2000년 마지막 개인전까지 몇 차례 더 방문했던 이 시기에는 자연스럽게 모국의 풍경과 분단현실을 주제로 한 작품이 눈에 띄게 증가한다. 이 작품들이 정치적이라 할 수 있다면 단순히 한국의 풍경을 소재로 했기 때문이 아니라, 관습적인 감각의 분할 방식에 이질감을 불러일으키는 회화적인 언어로써 분단, 전통과 단절된 현대성 등 모순된 현실을 재현하면서 이중의 이질감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미완(未完)의 미학: 2000년대 초 ~ 현재

말년은 대개 순응의 시간이다. 지난 시간의 불협화음과 화해하고 얼마 남지 않는 시간과 타협하거나 삶의 관조를 통해 관용과 조화, 종합에 이를 때다. 그러나 한 세기를 살아낸 김병기는 여전히 타협과 절충을 경계하고 ‘간극’에서 새로운 창조를 시도한다. 2000년 중반 40여 년간의 미국 동부에서의 생활을 마감하고 LA로 거처를 옮기면서 그의 작업은 다시 한 번 전환의 계기를 맞이한다. 캔버스에 캘리포니아의 풍광이 가득 담기면서 이전 시기의 강한 원색은 자취를 감추고 LA의 화창한 하늘과 누런 대지의 색이 주조를 이룬다.


 


  

 산악도 7폭  1970년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가지고 설명              인왕산 2005년 남북한의 대치가 담겨 있다고...


 

이번 전시에 김달진미술자료빅물관은 몇 종의 미술자료를 대여해 주었다. 그리고 몇년 째 부쳐드리는 서울아트가이드 잡지를 통해서 한국미술 소식을 본다고 말씀하셨다.  점심식사 자리에는 김병기, 최은주 실장, 본인, 권근영기자가 함께했다.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