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한희: The Space Collection
2015.10.17-11.15
@대림미술관 프로젝트 스페이스_구슬모아 당구장

지난 13일 한남동에 위치한 구슬모아 당구장을 방문했다.
초행길에 비가 오는 날이라 도착하는데 꽤 오래걸렸다. 독서당로를 오르다 웨스턴차이나 라는 레스토랑을 끼고 계단으로 내려가면 4개의 당구장 동그라미 간판을 만날 수 있다. 주차장이 없으므로 대중교통을 이용할 것, 한남역에서 내릴 경우 길이 생각보다 복잡해보인다는 것. 참고하면 좋다.

사실 구슬모아 당구장이 만들어진 과정을 이해하면 덜 고생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 한남동의 독서당길의 외진 골목에서 방치된 당구장을 이름을 바꾸지 않고 그대로 살려 국내 작가를 지원하기 위해 전시공간으로 꾸며 둔 곳이 바로 이곳이다. 당연히 외졌고, 당연히 발길이 쉽게 가지지 않는다.

대림미술관에서는 '헨리 빕스코브-패션과 예술, 경계를 허무는 아티스트'전이 열리고 있어 비슷한 성격의 전시로 비교해서 볼 수있을 것이라는 예상도 있었다. 그렇지만 두 전시가 계획에 의해 연계(?)하 듯 열렸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구슬모아 당구장의 전시들은 공모에 의해 선정된 작가들의 전시가 1년 단위로 계획된다. 계한희 전시 뒤로 2015 전시는 1건 남았다.

계현희는 자신의 성의 영문인 KYE(=카이)라는 브랜드명으로 활동하는 패션디자이너이다.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 칼리지 오브 아츠 앤드 디자인(Central Saint Martins College of Arts and Design, CSM)라는 학교를 졸업하던 2011년 바로 런던패션위크로 데뷔, 지금까지 활동 중이란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왼쪽으로 HATE라고 쓰여진 벽이 보인다. 2016 컬렉션을 보면 이 프린트의 의상을 볼 수 있다. 2016의 키워드라는데, 그녀의 싫어함(HATE)은 어쩐지 귀엽거나 예쁘거나 장식적이다. 지금을 사는 젊은 사람들을 대변한다는 의상을 만든다는 계한희의 해석은 HATE가 악의적이거나 진지한 증오가 아닌 무게를 덜어내어 디스와 같은 놀이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KYE 페이스북 참조)

kye를 필기체로 번쩍이게 형상화한 다음 작품은 그녀 자신같이 느껴졌다. (최근 젠틀몬스터라는 브랜드와 협업했던 안경테에서 봤기에 망정이지,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나에겐 순간 raye로 보였다)
대각선 맞은편에 있던 작품과 비슷한 느낌을 줬는데, 이들은 모두 번쩍이는 소재와 금을 연상시키는 색을 사용했다는 것이 공통점이다. 앞의 작품은 전구를 프레임 안에 넣어 불을 켜는 방식으로 예전 간판처럼 보인다. 저러한 간판은 주로 쇼를 하는 극장의 홍보수단의 성격이 강했는데 그러고보니 그녀의 쇼가 많은 사람들을 열광시키고 있구나 했다. 인도의 속담 중에 신이 실수해서 만든 두 가지가 여자와 금이라 했던가. 계한희 자신이기도 한 KYE 의 이러한 표현은 지금 이순간 그녀를 바라보는 이들의 눈에 비친 자화상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방문한 시간에도 (전시끝나기 1시간 전쯤) 잘 차려입은 학생(으로 보일만큼 어려보이는)들이 우산을 접고 계속 입장했다. 잘 차려입은 이들은 평소에 전시장에서 보아온 차려입음과 다른, 어떻게 보아도 패션디자인과 혹은 관련전공을 하는 것으로 보였다. 나의 선입관을 의심했으나 그들의 대화 중 사용용어와 생활대화중에 '패디'란 단어가 이를 뒷받침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자신의 업계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어 자신의 세계를 개척하고 영국에서 공부했지만 모국인 한국을 포함한 전세계에서 인정을 받으며 모국의 패션위크까지 진출한 브랜드를 갖고있는 전문가, 자서전에 이어 패션디자이너로서 의상은 단 하나도 포함되지 않은 아트개인전을 열었다. 그런데 아직 스물일곱. 이들에게 이보다 달콤해보이는 인생이 있을까. 나도 부러운데.


손가락으로 형상화한 KYE의 로고로 카펫을 만들고, 손가락 장갑으로 GHOST라는 단어를 만들었다. 그라피티의 글씨는 알아볼 수 없었지만 3줄 중 중간은 서울이라는게 눈에 띈다. 아마도 서울 전시를 위해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뚫린 구멍으로는 2012년부터 2015년까지의 영상아카이브 중 일부를 전시하고 있었다. 전시된 대부분의 내용이 2015-2016컬렉션과 연관한 내용이란걸 생각한다면 과거의 계한희를 멀리두고 엿보는 모양처럼 보였다. 전시장을 가로질러 계한희의 KYE가 동경하는 화려한 대상이라면, 저 구멍에 팔을 걸고 기대어 바라보는 관객들은 자연 그녀의 팬처럼 보이는 구도는 의도일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고.


구슬모아 당구장은 관람료가 무료였다. 아마도 원래의 취지에 맞게, 젊은 작가들을 소개해주고 지역주민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편안하게 가까이서 그들을 만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리라. 그럼에도 내가 들고간 리플릿은 마치 유료티켓인 양 1매 2인 입장이라 버젓이 써있었다. 이것은 조금 마음상한 부분이다.
그렇지만 전시만큼은 장소와 잘 어울리는 젊은 전시였다. 패션디자이너 중에는 다양한 형태로 작업을 함으로 해서 주변의 다른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는 사람들이 있다. 그녀가 그러한 사람이 되어가는 중이다. (이미 영감을 주고 있지만)그래서 20대인 그녀의 30대가 40대가 50대가 그 이후가 기대된다. 어쩌면 영국의 비비안웨스트우드 할머니처럼 할머니가 되어서도 영감을 줄지 모른다. 그래서 다음 전시도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이곳의 공식 리플릿은 이렇게 아코디언처럼 접혀서 1년치를 한꺼번에 나눠준다. 그리고 그 안에 한 장이 한 전시의 리플릿이다. 모두는 분리가 가능하며, 뒷장의 무늬덕인지 책갈피처럼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놓친 전시들에는 다양한 작가들이 담겨있었다. 내년엔 좀 더 잘 챙겨봐야겠다는 생각, 들었다.

사진.글.효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