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과 관련된 역사적 사건을 다룬 뉴스상영(좌), 박물관 내 도서관(우)


소장품 3만 여점 중 3/2인 1만 9천 여점이 기증품인 서울역사박물관(2005년 자료), 박물관 초기의 여러 우려에도 불구하고 지난 목요일 방문했을 때 많은 관람객들과 짜임새있는 공간구성 등으로 최근 방문한 박물관 중 그 역활을 가장 잘 해내고 있어 보였다.  


 

기증자들을 위한 벽면(좌), 기증된 유물을 기증자의 이름과 함께 스크린 상영(우)

 


경희궁 일대 디오라마: 현재(우) 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를 거쳐 현재까지 총 3개로 제작되었다.


서울2000년역사문화특별전 <경희궁은 살아있다>(-3.13)가 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진행 중이다. 기획의 글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400여 년 전에 '경덕궁'이라고 불리던 경희궁, 경복궁 중건에 따른 경희궁 전각 일부가 헐리고 일제강점기 경성중학교와 총독부 관사가 들어서면서 그 존재가 거의 사라진 궁궐이지만 지금도 흔적 찾기는 계속 진행 중이다. 시민들 기억 속의 경희궁을 되살리는 작업, 거기서부터 경희궁은 '기쁨이 넘치고 빛나는 궁'으로 재인식될 것입니다. (편집)



'창덕궁에는 금까마귀 빛나고, 경희궁에는 옥토끼가 밝도다.', 영조어필, 1770년


 


'10명의 왕과 100여 명의 왕족들'섹션(좌), 전시장 전경(우)


경희궁과 관련된 왕실의 이야기들이 다양한 유물과 자료들로 보여진다. 


 


왕실행사와 관련된 그림(좌), 개화초기 열차운행에 따른 당시 반응에 대한 기사(우)




정조는 1776년 즉위하며 숭정전에서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라고 외쳤다. 그 숭정전의 현판이 전시되었다. 궁에 대한 상세한 기록이 담긴 『경희궁지』를 남긴 만큼 정조는 자신의 어린시절을 함께한 경희궁에 대해 특별한 애착이 있었다고 한다. 


 


경희궁과 관련되어 발굴된 전각의 부자재들(좌), <어제망관악시>(우)


어제망관악시, 경희궁 영취정에 걸었던 현판으로 숙종이 영취정에서 관악산을 바라보고 감회를 적은 칠언절구이다.


'좌의 명산이 富林(지금의 과천)에 있는데 머리 들어 남쪽 바라보니 흰구름이 깊구나. 때때로 북암유상기를 읽으니 이 몸이 관악산에 올라간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