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 그루브 흥

2015.11.13-2016.01.29

@세종문화회관미술관


작년 박수근 50주기에 이어 올해는 백남준 10주기 추모전이 연중내내 잡혀있다. 시류에 맞춰 (티켓의 은총도 겹쳐) 지난주 가까운 곳에서 열렸던 백남준 그루브 흥 展에 다녀왔다.

 

본래 포토존이벤트라는 이름으로 열렸던 대상인 전시소책자 '전시 사용설명서'는 종료 하루 전이라 노력없이 얻을 수 있었다. 훑어본 책자와 비슷한 느낌으로 공간에 비해 많은 내용을 담고자 노력한 흔적이 보였다. 무엇보다 '전시 사용설명서'라는 말은 백남준의 미디어작품들이 기계로서 물성을 재미있게 표현했다고 생각했다.

시작은 이러했다. 먼저 입구(로 예상되는 벽)를 통해 '백남준 예술 입문을 위한 가이드'에는 먼저 백남준 작가 자신이 전제한 세 가지 사항을 알려준다.

 

첫째, 셀프 없이 너 스스로 해라 Do it your...
둘째, 예술을 고상하게 만드는 좌대를 치워버리자
셋째, 나의 비디오아트를 보기 위해서는 의자가 필요하다

처음 그럴듯하게 등장하는 그의 작품은 <피버 옵티크 Phiber Optik>이다. 멀리 장흥아트파크에서 소장중인 이 작품을 보고 일행이 오토바이 머리쯤에 있는 모니터 버튼을 눌렀다. 순식간에 일어난 이 일로 화면은 노이즈 영상만 나오게 되었고 우리는 당황했다. '첫째, 셀프 없이 너 스스로 해라 Do it your...'를 실행하자마자 생긴 일이었다.
조작 미숙 정도의 일로 다시 화면은 직원의 도움으로 돌아갔지만, 작가작품의 장기보관으로 생긴 문제(단종된 텔레비전을 장시간 사용했다는)로 노후기계교체와 앞으로의 보존을 고민한다는 것이 순간 체험으로 와닿았다.

(사진. 나름 귀여운 모습의 <피버 옵티크 Phiber Optik>, 뒤에는 작가의 말들과 연도별 행적들이 기록되어있다)

Close your eyes!
Open your eyes!
3-Quarters Close your eyes!
2/3 open your eyes!

1.좌우간 나의 작품을 30분 이상은 보라
2.눈을 4분의 3 감고 보라
3.극단적인 집중 Extreme concentration을 하라
4.그러니 직접 해보라

처음에는 재미있겠지만 - 나중에는 (필시) 지루해질 것이다 -

견딜 것!
(필시)다시 재미를 느끼게 될 것이다 -
그러다가 다시 지루해질 것이다 -

견딜 것!
(필시)다시 재미를 느끼게 될 것이다 -
그러다가 다시 지루해질 것이다 -

...
(반복)

그의 또 다른 작품감상법을 시도하며 아카이브들을 관람했다. 일부는 우리박물관에서도 볼 수 있는 자료들이라 친숙했다. 아쉬웠던 건 <특별기획 백남준의 비디오아트 세계>(KBS)였는데 닫힌 공간이 아니라 동시간에 진행된 행사와 소리가 겹쳐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이번 전시에서 특히 주목할만한 것은 '1차 자료를 여과 없이 보여줌으로써 이후 연구를 유도했다'는 것인데, 무엇보다도 백남준 자신이 이야기하는 자신의 작품과 이야기가 더 큰 목소리를 내어 '예술은 사기다'라는 말에 축약된 단순한 모습만이 아니라 다양한 관심사와 다양한 활동을 했던 그를 일반관람객도 친절하게 볼 수 있었다는 데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 영상은 작가가 자신의 작품세계를 직접이야기하는, 전시에서 하나뿐인 한국어 영상자료였는데 듣지 못함은 정말 안타까웠다. 번역본들은 있었으나 '셀프 없이 너 스스로 해라 Do it your...' 같이 그의 생각에 곁들여진 외국어와 한국어를 오가는 유희는 번역본에서 느낄 수 없지 않은가.. 외장 스피커나 헤드폰이라도 설치했다면 좋았을 거란 생각이다.


(사진. 위성 3부작, 이들은 칸막이가 있어 관람하기 좋았다)

1관에서 나오면 '백남준을 이해하기 위한 추천도서 200권' 이라는 목록이 보인다. 보도자료를 보도한 언론글에 꼭 빠지지 않는 것을 보면 고작 한 면의 벽이지만 신경을 많이도 썼나보다. 최근 한 작가의 일대기를 돌아보는 아카이브 전시들 중 이렇게 작가를 이해하기 위한 책들을 전시하거나 서재를 재현하곤 하는데 (아마도)공간의 규모상 목록으로만 보여준 듯 하다. 역사서부터 우주와 지구과학, 철학, 미학, 음악, 사회, 종교 혹은 샤먼관련서를 비롯한 직접적인 백남준을 기록한 책까지.. 그가 즐겨 읽고 영감을 받고 우리가 이해하기 도움 될 책들이다. 언젠가 서가로 만들어 함께 전시해주면 종일 그 서가에 있어보고도 싶다.

 
(사진. 너무 많아서 일일이 읽지는 못했다.. 전시사용설명서를 참고하면 좋다)

2관으로 이동하면 입구부터 거대한 의자더미가 양쪽에 드러난다. 1963년 플럭서스 그룹전에서 그가 설치했던 관객 참여형 퍼포먼스를 재연한 것으로, 의자를 빼내어 백남준의 영상 앞에서 볼 수 있도록 한 것이었다. 물론 무너질만큼 허술하게 해놓지도, 따로 빼갈만큼 영상 앞에 의자가 부족하지도 않아 실제 관객 참여는 적었지만 전시 처음, '셋째, 나의 비디오아트를 보기 위해서는 의자가 필요하다'를 떠올리게 하며 1관에서보다 전시 속 작가에 보다 깊이 동조하게 만들었음은 분명했다. 보통이라면 유리관 안에서 손 끝도 닿지 못할 50년도 넘은 옛날 작품에 현재의 내가 뭔가를 해볼 수 있다는 것은 가슴두근거리는 일이 아닌가!

 
(사진. 2관으로 가는 길 / 의자더미는 한 쪽은 저렇게 움직일 수 있게 다른쪽은 움직일 수 없게 고정되어있다)

사진으로만 남은 퍼포먼스까지 기록한 '16테제'는 1963년 백남준의 첫 전시의 전시 포스터에 적힌 내용이라고 했다. 첫 전시에 이러한 내용들을 기록했다니, 전시를 보면 볼 수록 그는 정말 천재였나 싶다. 그간 작품위주로만 감상했던 그를 16가지 테마로 길게 적힌 글과 첨부사진으로 만나니 그의 작품이 우주에 있는 것이 아니라 피부에 붙어 있는 일상의 느낌이다.

 
(사진. 16테제 / 1003)

 
(사진. 1003, TV 라디오 방송은 물고기 알과 같다 생명의 씨앗이지만 수정율이 낮다 그야말로 다다익선이다_라는 말이 바닥에 적혔다)

그는 1996년 뇌졸중으로부터 회복되었으나 이후 거동이 불편해 휠체어를 타고다녔다. 마지막은 휠체어가 놓여있는 방이었는데, 그 상황에서도 영상을 만들어 휠체어에 앉아 그와 같은 눈높이로 영상을 볼 수 있도록 해두었다. 누군가 밀어주는 휠체어에 앉아 뉴욕 시내를 돌며 찍었을 영상을 보는 내내 마음 한구석이 꾸물댔다. 여태 보아온 위성을 통한 생중계 영상이나 모자에 서스펜더로 멋을낸 그의 인터뷰영상을 지나온 터라 한 사람의 마지막 창으로 보는 영상이 내 삶의 마지막 영상인양 몰입된다. 그렇게 작가로 활동을 하며 끝까지 살아하는 모습은 숙연하게 오래도록 남았다.

 

깊이 알지 못했던 그의 일생을 전시로 짧게 돌아보며 생각보다 그는 소통하고자 친절했고, 재미있고, 유쾌하며, 동떨어진 꿈을 꾸는 것이 아니라 두 발을 땅에 딛고 서서 사회변화를 꿈꾸고 미래를 예측했으며 그것은 정확하게 지금의 우리와 소통이 가능했음이 이해되었다. 지금 그가 살아있다면 더 왕성하게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겠지만, 어쩜 살아있다면 그는 100년 후쯤 세상을 예측하고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올해 만날 다른 백남준展도 기대된다.


한 천재의 비범한 시도들이
(비범하기 때문에 천재이다)
일으키는 불길을 끌 것이 아니라,
직접 천재의 길을 걸어 볼 일이다.
비록 우리 국민들이 그런 일을 전혀 모르기는 하지만,
그들은 처음엔 트집을 잡다가
나중엔 이러한 것을 찬양하는 궤변을 늘어 놓을 것이다.
-백남준 1959-
(전시내용 중)


사진.글.효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