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書 x 라틴 타이포그래피 - 동서 문자문명의 대화> 전시를 보고
인간의 문명은 문자의 발명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인간은 자연을 본떠 문자를 만들었고, 그래서 문자는 인간의 모습을 많이 닮아있다. 때문에 기록하고 기억하게 하는 문자의 보편적 성질은 동·서문명 모두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 현상의 차이일뿐 본질은 잇닿아 있다. 그것이 예술의 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진행된 <한글 書 x 라틴 타이포그래피 - 동서 문자문명의 대화> 전시를 보고 느낀 소회이다.
동·서양의 예술가들이 문자를 주제로 창조해 낸 작품들을 한 공간에 있었다. 크기, 질료, 색상, 질감, 매체까지 모두 제각각이었지만 예술은 한 공간에서 화이부동(和而不同)하였다.
또한 애초 문자의 탄생이 인간이 서투르게 그려낸 자연물에서 왔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인지 아니면 작가들의 제한없는 상상력과 거침없는 용기때문이었는지 작품들은 자연과 그림, 문자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었다.
형태와 메시지가 많은 것을 말하기도, 보여주기도 하였다. 서예박물관의 재개관 더불어 진행되고 있는 다양한 시도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새로운 것을 시도한다는 것은 익숙한 것으로부터의 결별이 필요하다고 했던가? 그런면에서 이러한 다소 충격적으로 느껴졌던 시도는 동양적인 것, 서예같은 것에 대해 가지고 있던 경계를 좁게 느껴지게 했으며, 기꺼이 넘어가고 싶게 만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전시장 입구에 서 있었던 10폭 빈 병풍은 마치 내게 ‘당신이 넘고 싶은 경계는 무엇이냐?’라고 묻는 것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