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연재칼럼

윤태석 관장명감

윤태석

윤태석

문화학 박사, 남평문화주조장 대표

인명사전 바로가기 : www.daljin.com/author/4824 1966년 생, 한국박물관협회 기획지원실장·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장·국립항공박물관 학예연구본부장 역임. 현 한국박물관학회·한국문화예술경영학회 이사, 인천시박물관미술관진흥위원, 용산역사박물관운영위원. 문체부장관상(2008)·자랑스런박물관인상(2022) 수상. 『한국박물관 100년사』(사회평론, 2009) 등의 공저, 연구 논문 다수.

LAST PUBLISHED

쇠뿔도 녹일 듯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해 여름 어느 날 그가 남평주조장을 찾아왔다. 너무 오랜만인지라 반가움에 얘기를 나누느라 그의 달라진 모습을 알 수 없었다. 나중에 보니, 손가락 하나가 보이지 않았다. 자초지종을 물으니 대형어류박제작업을 직접 하다 큰 가시에 찔려 몇 차례 수술과 오랜 병원 신세까지 졌지만, 결국 손가락 하나를 잃고 말았다고 했다. 그만하길 다행이라고도 했다. 박물관이 뭐길래 손가락까지 잃다니. 그는 이렇듯 평생을 바다와 함께 살아온 해양인이다. 수십 년간 해양 생물의 기록과 표본을 수집하여 문화로 박제해

더보기

ALL(64)

(64)오대양을 누비던 선장, 바다의 생명을 기록하다. 땅끝해양자연사박물관 임양수 관장

쇠뿔도 녹일 듯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해 여름 어느 날 그가 남평주조장을 찾아왔다. 너무 오랜만인지라 반가움에 얘기를 나누느라 그의 달라진 모습을 알 수 없었다. 나중에 보니, 손가락 하나가 보이지 않았다. 자초지종을 물으니 대형어류박제작업을 직접 하다 큰 가시에 …

(63)산업화의 파도 속에서 건져 올린 거제의 역사와 삶, 거제박물관 황수원 관장

1970년대부터 거제도는 산업화의 물결을 타고 대한조선공사의 후신인 대우조선과 삼성중공업 등 중공업 단지가 들어서게 된다. 이에 따라 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찾아 거제로 들어오게 된다. 화복동문(禍福同門)이라고 했던가. 새로운 도시를 만들기 위해 반듯하고 너른 도로, 주…

(62)소외된 장르를 깨우고 한국미술의 중심을 잡다, 국립현대미술관 윤범모 관장

그가 미술관과의 인연에 대해 회상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중앙일보사 직영 호암갤러리(리움미술관 전신)의 개관 실무 책임자로 일하면서부터입니다. 80년대 초만 해도 국립현대미술관(이하 국현) 조직에 학예 분야가 없어 학예사(큐레이터)라는 직함 자체가 없었을 때였지요. …

(61)자연에서 배워, 박물관에 주다. 제주특별자치도 민속자연사박물관 정세호 관장

농촌에 살다 보니 봄여름에는 지네와 개구리를 잡고, 가을이면 으름 따 먹기, 겨울이 되면 동네 또래와 꿩을 잡는 등 자연과 함께 했던 기억이 어린 시절의 전부였다. 초등학교 때 어른들이 장래희망을 물으면, ‘잔디밭에서 놀쿠다!’(‘놀겠다.’는 제주 방언)’라 말해 핀잔…

(60)국제적 시선으로 성북을 읽다. 성북구립미술관 김보라 관장

김보라, 미로재단 조르디 준코사 부관장과 레지스트라 ⓒ 2004 바르셀로나 미로재단불어불문학을 전공하면서 프랑스 문화예술을 접하게 되었다. 사간동 프랑스문화원을 드나들면서 인접 미술관을 자주 찾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미술사 및 미술비평 등 미술 관련 강좌도 수강하게 되었…

(59)백토에서 찾은 지역의 힘, 양구백자박물관 정두섭 관장

초등학교 졸업사진, 1985 (중앙 우측 정두섭, 좌측 친구 남규)지역 어린이 도예교육, 2004강원도 양구, 차 한 대 들어오지 않는 산길을 따라 한 시간 반을 걸어 나와야 세상을 만날 수 있는 곳, ‘공수리(公須里)’에서 정두섭은 태어났다. 마을은 몇 가구 되지 않…

(58)어느 건축가의 정동 사유, 배재학당역사박물관 김종헌 관장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던 때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9남매 중 혼자 교육을 받아 전북대학교 법정대학에 진학했다. 사법시험에 합격해 집안을 일으킨 후, 정치평론가가 되고 싶었다. 2차 시험에 번번이 떨어지던 중, 집에 큰 불이 나 그 꿈을 접어야만 했다. …

(57)모두를 담는 예술의 그릇, 대담미술관 정희남 관장

중학교 1학년, 미술 과목 담당 교사를 담임으로 만났다. 그림에 소질을 알아차린 담임교사에 의해 미술을 시작했다. 그래도 성적은 늘 상위권을 유지했다. 2학년이 되어서는 새로운 담임선생님으로부터 미술을 그만두라는 권유를 받기도 했다. 명문고 합격률이 학교의 위상을 결정…